Daily Bread Detail Page - 오늘의 양식 내용
오늘의 말씀
02/09/2019 토요일
진정한 자기 찾기
그 인형은 다른 동물인형들과 만나면서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낫싱’은 한 때 자신의 몸에 꼬리와 수염과 줄무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데 도와준 얼룩고양이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낫싱’은 자신이 토비라는 이름을 가진 봉제 고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냅니다. 그의 주인은 그에게 새로운 귀와 꼬리, 수염, 줄무늬를 꿰매어주면서 그를 다정스럽게 회복시켜줍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나는 누구인가?’ 요한은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요한1서 3:1).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예수님을 보게 될 때 우리의 모습이 그분과 같게 될 것입니다 (2절). 바로 고양이 토비처럼, 죄로 인해 손상되었지만 우리에게 원래 예정된 정체성을 우리도 언젠가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그 정체성을 부분적으로만 알고 서로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게 될 그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정하신 정체성을 완전히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롭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요한1서 2:28-3:3그(그리스도)가 나타 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한1서 3:2
어디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을 것인가? 성경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Daily Article
02/09/2019 SATURDAY
Discovering My True Self
Encounters with other animals spark memories. Nothing realizes that he used to have a tail, whiskers, and stripes. But it’s not until he meets a tabby cat who helps him find his way home that
Nothing remembers who he truly is: a stuffed cat named Toby. His owner lovingly restores him, sewing on new ears, tail, whiskers, and stripes.
Whenever I read this book, I think about my own identity. Who am I? John, writing to believers, said that God has called us His children (1 JOHN 3:1). We don’t fully understand that identity, but when we see Jesus, we will be like him (V 2). Just like Toby the cat, we will one day be restored to the identity intended for us, which has been marred by sin. For now, we can understand that identity in part, and we can recognize the image of God in each other. But one day, when we see Jesus, we will be fully restored to the identity God intended for us. We will be made new.
- AMY PETERSON
Today's Reading
1 John 2:28–3:3We know that when Christ appears, we shall be like him, for we shall see him as he is.
1 John 3:2
Where do I find my identity? According to Scripture, how does God view me?
God, thank You for rescuing us and restoring us.
오늘의 말씀
02/08/2019 금요일
사랑과 평강
안아주었습니다. 슬픔 속에 힘들었던 그날, 말없이 이해해준 그 친구로 인해 처음으로 평강을 느꼈고 내 생각처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편 16편에 있는 다윗의 표현처럼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주시는 평강과 기쁨은 힘들 때 꾹 참으며 고통을 누른다고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을 때 경험하게 되는 선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1-2절).
우리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쓰라린 고통에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 다른 ‘신들’을 찾으면 고통이 다가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통을 회피하려는 노력이 결국은 더 깊은 고통을 초래할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곧 알게 됩니다(4절).
다른 한편,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삶이 비록 고통스러울 때라도 여전히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며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습니다(6-8절). 그리고 우리의 고통을 지나 죽음조차도 없애지 못할 평강과 기쁨으로 우리를 부드럽게 이끄시는 하나님의 친절한 팔에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있습니다(11절).
오늘의 성구
시편 16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 시며......주께서 생명 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 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시편 16:10-11
하나님 아버지, 기쁠 때나 아플 때나 우리를 부드럽게 안아주시고
붙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치유하시는 주님을 믿으며 돌아서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고통을 지나 평강과 기쁨으로 이끌고 붙들어주신다 .
Daily Article
02/08/2019 FRIDAY
Love and Peace
As David describes in Psalm 16, the kind of peace and joy God brings into our lives isn’t caused by a choice to stoically stomp down the pain during hard times; it’s more like a gift we can’t help but experience when we take refuge in our good God (VV 1–2).
We could respond to the aching pain that death brings by distracting ourselves, perhaps thinking that turning to these other “gods” will keep the pain at bay. But sooner or later we’ll find that efforts to avoid our pain only bring deeper pain (V 4).
Or we could turn to God, trusting that even when we don’t understand, the life He’s already given us—even in its pain—is still beautiful and good (VV 6–8). And we can surrender to His loving arms that tenderly carry us through our pain into a peace and joy that even death can never quench (V 11). - MONICA BRANDS
Today's Reading
Psalm 16You will not abandon me to the realm of the dead.... You mak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you will fill me with joy in your presence.
Psalm 16:10-11
Father, thank You for the way Your tender touch embraces and holds us in our times of joy and pain. Help us to turn in trust to You for healing.
God’s love carries and holds us through our pain into peace and joy.
오늘의 말씀
02/07/2019 목요일
예비된 선한 일
들었고, 사기도 당하고 여러 번 갈취도 당했습니다. 또 다시 당하려나?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남자는 그저 그 도시 어디에 가면 가장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초콜릿 바를 주고는 웃으면서 떠나갔습니다. 그 작은 행위 하나로 우리는 그날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여행 전체를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일로 우리는 기분을 살려준 그 사람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 남자는 무슨 이유로 모르는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온 걸까요? 그 사람은 누군가를 축복하기 위해 온종일 그 초콜릿 바를 들고 다녔던 것일까요?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큰 미소를 가져다주고, 또 어쩌면 누군가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성경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습니다(야고보서 2:17,24). 우리에게는 그것이 어렵게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실 뿐 아니라 “전에 [그 일들을]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에베소서 2:10) 하셨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오늘 위로의 한 마디가 필요한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게”만들어 놓으셨든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기회를 마련해놓으셨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에베소서 2:6-10우리는......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10
오늘 누구를 위해 기도하거나 도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 앞에 누구를 서 있게 하실까요?
주님,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께서 저를 사랑하신대로 다른 이들에게
주의 사랑을 나누어주게 하소서.
Daily Article
02/07/2019 THURSDAY
Good Works Prepared
What had made the man reach out to two strangers? Had he gone around with a chocolate bar the entire day, looking to bless someone with it?
It’s amazing how the smallest action can bring the biggest smile—and possibly direct someone to God. The Bible stresses the importance of doing good works (JAMES 2:17, 24). If that sounds challenging, we have the assurance that God not only enables us to do these works, but has even “prepared [them] in advance for us to do” (EPHESIANS 2:10).
Perhaps God has arranged for us to “bump into” someone who needs a word of encouragement today or has given us an opportunity to offer someone a helping hand. All we have to
do is respond in obedience. - LESLIE KOH
Today's Reading
Ephesians 2:6–10For we are … created in Christ Jesus to do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in advance for us to do.
Ephesians 2:10
Who can you pray for or help today?
Who might God be putting in your path?
Lord, may I respond in obedience and share Your love with others as You have loved me.
오늘의 말씀
02/06/2019 수요일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랑
감사하게도 성도들이 다가와 우리 가 족 을 위 해 기 도 해 주 었 고 , 기도와 성경읽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라가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과 성도들의 사랑으로 나는 변화되었습니다.
첫 예배에 참석한 지 2년이 지나, 나는 알랜과 자비어와 같이 세례를 받겠다고 신청했습니다. 얼마 후 매주 나누는 대화 가운데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너 달라졌구나. 예수님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주렴.” 몇 달 후 어머니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사울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가장 두려운 교회 박해자였습니다(사도행전 9:1-5). 사람들이 사울을 도와 예수님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해주었습니다(17-19절). 사울의 급격한 변화는 성령의 권능으로 가르치는 그의 가르침에 신뢰를 더해주었습니다(20-22절).
우리의 예수님과의 첫 인격적인 만남은 사울의 경우처럼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삶의 변화도 그렇게 빠르고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기회를 얻게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사도행전 9:1-22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도행전 9:20
.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된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줄 가치가 있다.
Daily Article
02/06/2019 WEDNESDAY
Love Changes Us
Thankfully, believers reached out, prayed for our family, and taught me how to nurture a relationship with God through prayer and Bible reading. Over time, the love of Christ and His followers changed me.
Two years after that first church service, Alan, Xavier, and I asked to be baptized. Sometime later, during one of our weekly conversations, my mom said, “You’re different. Tell me more about Jesus.” A few months passed and she too accepted Christ as her Savior.
Jesus transforms lives . . . lives like Saul’s, one of the most feared persecutors of the church until his encounter with Christ (ACTS 9:1–5). Others helped Saul learn more about Jesus
(VV 17–19). His drastic transformation added to the credibility of his Spirit-empowered teaching (VV 20–22).
Our first personal encounter with Jesus may not be as dramatic as Saul’s. Our life transformation may not be as quick or drastic. Still, as people notice how Christ’s love is changing us over time, we’ll have opportunities to tell others what He did for us. - XOCHITL DIXON
Today's Reading
Acts 9:1–22At once he began to preach in the synagogu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Acts 9:20
.
A life changed by Christ’s love is worth talking about.
오늘의 말씀
02/05/2019 화요일
마음의 이동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 국가 전체가 하나님 임재의 표시인 구름에 이끌려 새로이 거할 땅을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습니다. 이동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나 반복되는 것을 읽다보면 한편의 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거대한 부족은 계속해서 그들 자신의 짐 뿐 아니라, 장막과 구름 속에 계신 하나님이 모세와 만났던 성막의 가구들을 싸고 풀기를 반복했습니다(출애굽기 25:22 참조).
오랜 세월이 지나 예수님이 이 이스라엘의 이동에 관한 이야기에 보다 완전한 의미를 부여하시게 됩니다. 구름으로 인도하지 않고 예수님이 직접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따라오라”(마태복음 4:19)고
말씀하심으로 가장 중요한 주소 이전은 마음 안의 길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적들을 모두다 로마의 십자가 밑으로 인도하심으로 구름과 성소에
머무르시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얼마나 멀리까지 가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주소를 바꾸는 것처럼 마음의 이동도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집의 창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인도해주셨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민수기 9:15-23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민수기 9:17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정함으로 어떤 불안정이 있었습니까? 그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강하게 하는데 기도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주님,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움직이기를 싫어하는지 아십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오늘 주님의 사랑이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Daily Article
02/05/2019 TUESDAY
Moves of the Heart
During Israel’s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the cloud of God’s presence led a whole family nation to make one move after another in anticipation of a new homeland. The account is so repetitious, it reads almost like a comedy. Over and over the huge family packed and unpacked not only its own belongings but also the tent and furnishings of the tabernacle, where the God of the cloud met with Moses (SEE EXODUS 25:22).
Many years later, Jesus would give fuller meaning to the story of Israel’s moving days. Instead of leading from a cloud, He came in person. When He said, “Follow me” (MATTHEW 4:19), He began showing that the most important changes of address happen on roads of the heart. By leading both friends and enemies to the foot of a Roman cross, He showed how far the God of the cloud and tabernacle would go to rescue us.
Like changes of address, such moves of the heart are unsettling. But someday, from a window in our Father’s house, we’ll see that Jesus led us all the way. - MART DEHAAN
Today's Reading
Numbers 9:15–23Whenever the cloud lifted from the tent, the Israelites set out; wherever the cloud settled, the Israelites encamped.
Numbers 9:17
In what ways does choosing to follow God unsettle you? How might prayer help to strengthen your faith and trust in Him?
Lord, You know how much we don’t like to move. But we want to follow You. Please help us to go wherever Your love leads today.
오늘의 말씀
02/04/2019 월요일
오직 내가 볼 수 있는 것
너무나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사촌 요한은 그의 초점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는 자신의 위치나 사명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향하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그와 그의 제자들을 향해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라고 말하고는, 이어서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31절) 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자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28-30).
우리 삶의 중심점이 예수님이 되고, 온 마음 다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성구
요한복음 3:22-35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가장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주님은 내가 누구를 사랑하기를 원하실까?
주님, 저 자신과 저의 필요와 원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때가 많습니다. 자신을 벗어나 주님을 바라보게 도와주소서.
Daily Article
02/04/2019 MONDAY
All I Can See
Jesus’s cousin John clearly knew his focus wasn’t himself. Right from the start he recognized that his position or calling was to point others to Jesus, the Son of God. “Look, the Lamb of God!” he said when he saw Jesus coming toward him and his followers (JOHN 1:29). He continued, “The reason I came baptizing with water was that he might be revealed” (V 31). When John’s disciples later reported that Jesus was gaining followers, John said, “You yourselves can testify that I said, ‘I am not the Messiah but am sent ahead of him.’ . . .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3:28–30).
May the central focus of our lives be Jesus and loving Him with our whole heart. - ANNE CETAS
Today's Reading
John 3:22–35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John 3:30
How can I love Jesus best? Who might He want me to love?
Lord, I often get centered on myself and my needs and wants. Help me to look outside of myself to You.
오늘의 말씀
02/03/2019 주일
들으라고 만든 귀
그런 상실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배역을 실감나게 해낼 수 있을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제의를 받아들인 그녀는 연기를 준비하기 위해 극심한 슬픔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모임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나눌 때 처음에는 그녀도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처럼 그녀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말을 하지 않고 단지 듣기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진정으로 그들의 입장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귀를 사용함으로써 알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귀”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을 책망했습니다. 선지자는 주저 없이 그들을 “어리석고 지각이 없는 백성” (예레미야 5:21)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끊임없이 역사하시면서 우리에게 사랑과 교훈, 격려, 경고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모두 배우고 성숙해지기를 바라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렇게 되라고 귀와 같은 도구들을 주셨습니다. 이제 문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듣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
예레미야 5:18-23어리석고 지각이 없으 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예레미야 5:21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의 고집을 용서하시고,
제 귀를 열어 듣게 하소서.
듣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의 귀가 믿음의 성숙을 돕는다.
Daily Article
02/03/2019 SUNDAY
Ears Were Made for Listening
Initially she offered suggestions and thoughts when those in the group shared their stories. She, like most of us, wanted to be helpful. But gradually she stopped talking, and simply started listening. It was only then she began truly learning to walk a mile in their shoes. And her realization came by using her ears.
Jeremiah’s indictment against the people was that they refused to use their “ears” to hear the Lord’s voice. The prophet did not mince words, calling them “foolish and senseless people” (JEREMIAH 5:21). God is constantly at work in our lives communicating words of love, instruction, encouragement, and caution. The Father’s desire is that you and I learn and mature, and we have each been given the tools, such as ears, to do so. The question then is, will we use them to hear the heart of our Father? - JOHN BLASE
Today's Reading
Jeremiah 5:18–23Hear this, you foolish and senseless people, who have eyes but do not see, who have ears but do not hear.
Jeremiah 5:21
Father, I believe You are always speaking. Forgive my stubborn tendency to think I have all the answers. Open my ears that I may hear.
Our ears can help us mature in our faith, if we’ll listen.
오늘의 말씀
02/02/2019 토요일
회복됨
구약성경의 요엘 선지자는 온 유다 민족이 불순종한 결과로 유사한 곤충 떼가 유다 나라 전체를 파괴하는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이전 세대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메뚜기 떼가(일부 성경학자들은 외국군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봄) 침범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요엘 1:2). 메뚜기들은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훼손하고 사람들을 기근과 빈곤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죄의 길에서 돌아서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 “메뚜기가 먹은 햇수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리니”(2:25)라고 요엘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경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곤충들처럼 우리의 죄악들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정해 두신 풍성하고 향기로운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향하여 과거에 잘못 선택했던 것들에서 돌아설 때, 주님은 우리의 수치를 제거해주시고 주님 안에서의 풍성한 삶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오늘의 성구
요엘 2:18-27먹은 햇수대로 너희에 게 갚아 주리니
요엘 2:25
오늘 하나님께 어떤 용서를 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회복시킨다.
Daily Article
02/02/2019 SATURDAY
Restored
The Old Testament prophet Joel described a horde of similar insects ravaging the entire nation of Judah as a consequence for their collective disobedience. He foretold an invasion of locusts (a metaphor for a foreign army, in the minds of some Bible scholars) like nothing previous generations had seen (JOEL 1:2). The locusts would lay waste to everything in their path, driving the people into famine and poverty. If, however, the people would turn from their sinful ways and ask God for forgiveness, Joel says the Lord would “repay [them] for the years the locusts have eaten” (2:25).
We too can learn from Judah’s lesson: like insects, our wrongdoings eat away at the fruitful, fragrant life God intended for us. When we turn toward Him, and away from our past choices, He promises to remove our shame and restore us to an abundant life in Him. KIRSTEN HOLMBERG
Today's Reading
Joel 2:18–27I will repay you for the years the locusts have eaten.
Joel 2:25
What can you ask God’s forgiveness for today?
God’s love restores.
오늘의 말씀
02/01/2019 금요일
더 깊은 사랑
인정하고 그를 용서하기로 한 링컨은 나중에 그를 남북전쟁 때 중요한 정부각료로 임명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스탠튼은 점차 링컨을 친구로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포드 극장에서 저격당했을 때 링컨의 침상 옆에 앉아 밤을 새우고, 운명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이제 그는 역사 속의 인물이 되었다”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던 사람이 바로 스탠튼이었습니다.
화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 점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베드로는 이 말을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했던 일과(누가복음 22:54-62),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를 생각하며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셨던 깊은 사랑으로 우리는 죄의 빚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골로새서 1:19-20).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음을 알고 주님께 도움을 청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용서에 힘입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구주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우리도 용서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그분과 함께 아름답고 새로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힘을 주십니다.
오늘의 성구
베드로전서 4:7-11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 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 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
하나님처럼 용서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오스왈드 챔버스
Daily Article
02/01/2019 FRIDAY
Deeper Love
Reconciliation is a beautiful thing. The apostle Peter pointed followers of Jesus there when he wrote,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1 PETER 4:8). Peter’s words cause me to wonder if he was thinking of his own denial of Jesus (LUKE 22:54–62) and the forgiveness Jesus offered him (and us) through the cross.
The deep love Jesus demonstrated through His death on the cross frees us from the debt for our sins and opens the way for our reconciliation with God (COLOSSIANS 1:19–20). His forgiveness empowers us to forgive others as we realize we can’t forgive in our own strength and ask Him to help us. When we love others because our Savior loves them and forgive because He has forgiven us, God gives us strength to let go of the past and walk forward with Him into beautiful new places of grace. - JAMES BANKS
Today's Reading
1 Peter 4:7–11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Romans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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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giveness of God is the test by which I myself am judged.
OSWALD CHAMBERS
오늘의 말씀
01/31/2019 목요일
양자됨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미 경험했을 테니까요. 하나님이 단순히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요한복음 3:16) 하실 정도로만 우리를 사랑하셨다 해도 우리는 불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갈라디아서 4:4-5)는데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를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 당시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요점은 지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똑같이 유산을 이어받을 권리를 가진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7절).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는’ 것만 바라시지 않고 바로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 삼아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맞아들이시고 우리에게 그분의 이름을 주시며(요한계시록 3:12),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보란 듯이 불러주십니다. 당신은 이보다 더 권위 있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단지 하나님의 축복만 받은 사람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오늘의 성구
갈라디아서 4:1-7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사......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서 4:4-5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렇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다니요! 저를 구원하시고 저를 원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을 뿐 아니라 사랑 받고 있다.
Daily Article
01/31/2019 Thursday
Adopted
If you’re a child of God you already know, because it’s happened to you. We couldn’t complain if God had merely loved us enough to send His Son that we might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It would be enough for us. But not for God. He “sent his Son . . . to redeem” us, not as an end in itself, but “that we might receive adoption to sonship” (GALATIANS 4:4–5).
The apostle Paul refers to us as “sons” because in his day it was common for sons to inherit their father’s wealth. His point is that now everyone who puts their faith in Jesus, whether man or woman, becomes a “son” of God with equal and full rights of inheritance (V 7).
God does not merely want to save you. He wants you. He has adopted you into His family, given you His name (REVELATION 3:12), and proudly calls you His child. You could not possibly be loved more, or by anyone more important. You aren’t merely blessed by God. You are the child of God. Your Father loves you. - MIKE WITTMER
Today's Reading
Galatians 4:1–7God sent his Son...that we might receive adoption to sonship.
Galatians 4:4-5
Father, what a privilege to call You this! Thank You for saving me, and for wanting me.
You are more than saved. You are loved.
